웹사이트상위노출 삼성D·LGD, 국제 학술대회서 차세대 K-디스플레이 기술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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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작성일26-08-21 00:45 조회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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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상위노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 중인 제26회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술대회(IMID 2026)에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을 나란히 공개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8~21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디스플레이 학술대회 IMID 2026에서 폴더블 화면의 밝기 저하 문제를 해결한 ‘와이드뷰 디스플레이’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현재는 폴더블 화면의 접힘부에서 양측 곡면 밝기가 정면 대비 약 40% 수준에 그치는데, 최신 광시야각 기술을 적용한 이번 기술은 휘어진 부분에서도 휘도 저하가 최소화된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폴더블, 슬라이더블, 롤러블 등 차세대 폼팩터 제품에서 시야각에 따른 밝기 차이 없이 균일한 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밖에 화면을 늘이거나 형태를 변형할 수 있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최대 크기인 20형으로 구현안 ‘와이드 스트레처블’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AI 기기에 적용가능한 다양한 제품도 공개했다. 눈동자 움직임을 추적하는 휴머노이드 디스플레이, OLED 턴테이블, 목걸이 형태의 OLED 펜던트 등이다.
LG디스플레이는 자체 개발한 차세대 OLED 패터닝 기술 ‘FLiPP’을 최초 공개한다. 기존 OLED 공정에선 기판 위에 금속 그물망인 FMM(파인메탈마스크)을 부착해 적·녹·청색 유기물을 구멍에 맞춰 증착해 화소를 만들었지만, 색이 섞이는 등 불량이 나타나는 게 단점이었다. 반면 FliPP은 기판 전체에 유기물을 도포하고 고정해 자외선을 이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기 때문에 휘도와 수명을 높이면서 소비 전력을 줄일 수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차세대 OLED TV 패널 구동 기술인 HDS는 IMID ‘올해의 디스플레이 대상’을 수상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갤럭시S26 울트라용 OLED도 같은 상을 받았다.
이번 여름 부산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렸다. 한국은 유네스코 ‘세계의 기억’에 등록된 문화유산이 많은데, 그중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이다. 국립실록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 공동으로 ‘만세(萬世)에 전하노니’라는 실록 전시회를 열었고,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전시는 국가기록원(태백산본), 규장각(정족산본), 국립실록박물관(오대산본)에 보관된 실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전시회와 함께 동아시아 실록의 전통을 비교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는데, 한국·중국·베트남의 전문 학자들이 각국의 역사 편찬 경험에 대해 흥미로운 발표를 해주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기조강연자로 참석한 경험을 살려서, 실록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한국·중국·베트남에서 각각 다르게 펼쳐졌던 실록의 역사적 양상과 숙명을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왕조 위의 역사
전시회 제목에는 영원하다는 의미의 ‘만세’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만세는 일세(一世)와 대비되는 말이다. 일세는 한 세대(A generation), 곧 20~30년에 해당하지만, 만세와 대비될 때는 당대(contemporary)를 뜻한다. 그래서 관용적으로 ‘언론은 일세의 공론, 역사는 만세의 공론’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동시대의 공론을 주도하는 것이 언론이었다면, 역사는 한 세대에 그치지 않고 영원히 공론으로 남는다고 대체로 생각했다.
내가 조선실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진 의문 중 하나는, 보지도 못할 역사를 왜 남기나 하는 점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사례를 확인할 때 사관을 보내 관련 부분만 베껴오도록 했을 뿐, 사관 외에는 국왕을 비롯해 그 누구도 실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록은 기약 없이 ‘후대를 위해’ 남겨놓은 역사였다. 결국 그 ‘후대’란 해당 왕조 이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왕조나 국가 외에 문명, 혹은 왕조를 넘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관점이자 영역이 바로 역사였다. 그런 까닭에 왕조 시대에, 왕조 이후를 언급하는 모든 행위는 반역으로 몰릴 수 있었지만, 오직 ‘역사의 이름으로’만 왕조 이후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할 것이다.
‘맹자’와 ‘로마서’
역사 및 그 역사를 살았던 수많은 인간의 삶에 대해,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과 기독교 문명권은 서로 다르게 접근하였다. 다음과 같은 말을 비교하면 두 문명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① “세상의 질서와 원칙이 쇠퇴하면서, 거짓된 말과 몹쓸 행동이 생겨났다. 신하가 임금을,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끔찍한 경우도 있었다. 공자가 걱정되어 역사서 <춘추>를 지었는데… <춘추>가 완성되자 세상을 어지럽힌 무뢰배들이 벌벌 떨었다.” - <맹자(孟子)>
②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신약성경 <로마서>
두 고전의 말에는 기록과 평가가 공통으로 언급되지만 그 주체는 다르다. <맹자>는 역사의 평가가 두렵게 한다고 했고, <로마서>는 하나님이 진노하고 심판한다고 했다. 종종 나라에 죄를 지은 자들이 자기변명 삼아 하는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라는 망발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런 어법은 <로마서>보다 <맹자>의 문화 속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라이프니츠의 놀라움
유럽 17세기 후반, 작센(현 독일 지역) 출신 라이프니츠는 그리말디와 부베 신부로부터 중국 소식을 알게 되었다. 명나라가 망하고 만주족 청나라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들은 바에 따라, “위대한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인 이 왕은, 유럽 봉건제의 왕들이 신분제 의회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데 비해 역사의 평가를 더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역사 편찬자가 자신의 치세를 기록하고 비밀 서고에 보관할 때를 생각하여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갈 수 있는 행위를 조심하였다”고 자신의 저서 <최근 중국 소식>에 적어두었다. 기독교 문명에 살던 그는 군주가 신이 아닌 역사를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점에 놀랐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청나라 황제는 강희제(康熙帝) 성조(1662~1722)였다. 중국식 이름이 탕약망(湯若望)이었던 아담 샬 등 유럽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중국의 오랜 역사 편찬 전통의 일부만 들었을 뿐이다. 당대의 역사를 남기는 실록은 당 태종 때 편찬이 시작되어 조선과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팔려나간 실록
한데 라이프니츠가 역사의 기록에 그토록 예민했다고 말한 강희제 때 청나라의 실록이 외국으로 팔려나갔다. 청나라 실록에 대한 발표자였던 시앙쉬안 교수에 따르면, 1763년 나가사키를 통해 강희제 때 편찬되었던 3대 순치제의 ‘세조실록’이 일본으로 팔려 갔다는 것이다.
세조실록만이 아니었다. 후금(後金)을 일으킨 누르하치의 ‘태조실록’, 두 차례 조선을 침략하고 청나라를 세운 태종의 실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른바 ‘청나라의 초기 세 왕대(淸三朝)’ 실록이 에도로 밀반출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실록 관리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출된 청나라 실록은 상선이 싣고 온 물건 목록에서도 확인되지만, 이들 실록을 내각문고의 전신인 막부문고에 보관했다는 당시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세 실록은 교토대, 국회도서관, 동양문고, 도쿄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에도시대 학자들은 이 실록을 주제별로 분류하거나, 내용을 요약한 ‘사략(事略)’ 형태로 활용하기도 했다.
여전히 청초 세 실록이 어떻게 유출되어 일본으로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단서조차 알 수 없다. 망한 왕조의 실록이라면 자연 노출, 공개되었을 것이지만 한창 왕조의 긴장감이 높았을 강희~건륭 연간에, 그것도 외국으로 유출됐으니, 이 미스터리는 추적할 만한 연구 주제일 것이다.
열대 베트남의 ‘식록(寔錄)’
명나라 실록은 황제가 볼 수 있는 어람용 실록까지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관 외에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조선실록과 달랐다. 실록 편찬 뒤 명나라는 사초를 태웠고, 조선에서는 세검정 차일암에서 물에 씻었다. 물로 씻든 불로 태우든 이 행위는 한 시대를 정리하는 방법이자 예식이었다. 청실록은 만(滿)·몽(蒙)·한(漢) 세 언어로 편찬되었다. 정본 4부와 부본 1부가 제작되었으니, 조선처럼 5부 간행한 것이다.
‘실록’이라는 이름은 베트남에서도 발견된다. 베트남의 실록으로 완(阮·1802~1945) 왕조의 ‘대남식록(大南寔錄)’이 있는데, 식(寔)은 실(實)과 같은 글자이다. 성균관과 문묘가 있던 베트남이었으므로 실록도 편찬했으리라 짐작은 했었고 대략은 알고 있었는데, 레 투이 린 박사는 조선실록과 같은 실록을 베트남에서도 편찬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남식록의 경우, 전편은 지나간 왕조의 역사이고, 정편만 완 왕조의 실록이었다. 완 왕조 이전에는 고려~조선실록과 같은 체계적인 역사 편찬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데,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아마 열대의 고온다습한 기후가 종이기록을 보관하는 데 부적합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를 위해서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게 우선일 듯해 레 박사에게 물어보니 베트남 내에서 대남식록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한문을 읽을 수 있는 학자가 이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자를 바탕으로 한 쯔놈 문자를 사용해왔는데, 프랑스 지배 아래 1885년 이후 로마자 기반의 쯔꾸옥응으를 사용했다. 이것이 과거 역사에 대한 문맹을 초래한 셈이었다.
명실록과 청실록은 현재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대남식록은 일부 놈파운데이션(Nom Foundation)을 통해 이미지가 제공되고 있지만, 검색 시스템은 제공되지 않는다. 어떤 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그 사회의 역사와 경험을 아는 것이 첫걸음이다. 한국·중국·베트남의 실록 연구가 더 깊어지고, 그에 따라 서로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가 평화와 우호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讀史管見: 역사를 읽는 소박한 눈
미국·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에 따른 후속 협상 시한이 빈손으로 만료된 가운데 오만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의 오랜 우방이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두고 이란과 협상 중인 오만까지 폭격하겠다고 위협하자,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제한하는 결의안 제출을 예고했다.
미 폭스뉴스는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인터뷰 도중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완전히 폭격할 것”이라고 욕설을 섞어 말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이후 취재진이 ‘오만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그들(오만)이 매우 잘 행동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들을 다뤄왔듯 오만도 매우 쉽게 다룰 것”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이란과 합의한 60일간의 후속 종전 협상 시한이 이날로 만료된 뒤 나왔다. 양측은 지난 6월 종전 MOU를 체결하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등을 두고 60일간 후속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휴전 기간에도 교전이 재개됐고, 양측은 휴전 연장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이란 측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18일 미국이 MOU에 따른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오만은 미·이란 전쟁 기간 중립 노선을 유지하며 양측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한 오만은 전쟁 발발 직후 이란 측과 물밑 대화 채널을 구축했으며, 최근에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리를 둘러싼 협상을 이어왔다.
오만은 온건하고 관용적인 이슬람교 분파인 ‘이바디파’가 주류인 국가로,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왔다.
동시에 미국의 오랜 우방국이기도 하다. 오만은 1833년 걸프 지역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으며, 2009년에는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오만은 미국이 자국 항구를 역내 군사 물류 거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별도 미군 기지를 두고 있지는 않다.
이처럼 미·이란 양측과 관계를 유지해온 오만은 2015년 이란 핵 합의 협상 과정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발언이 미국의 전쟁 목표 달성을 위한 협상력이 약화한 상황과 관련 있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전했다. 이 매체는 “오만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궁극적으로 좋은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은, 그가 자초한 상황에 대한 분노를 반영할 뿐”이라며 “그저 반사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며 이번에는 오만이 표적이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군사·경제적으로 밀접한 우방국으로도 향하자 미국 정치권에서는 반발이 나왔다. 미 온라인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권한 제한 범위를 대오만 군사 행동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민주당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포착된다고 전했다. 앞서 미 상원은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군사 행동을 저지하는 결의안을 10번의 시도 끝에 통과시킨 바 있다.
민주당 소속인 팀 케인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내달 돌아오는 회기에서 대오만 전쟁 권한 제한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오만이 강력한 외교적 관계와 함께 FTA 관계로도 이어져 있다며 “권력에 취해 비틀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세계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전했다.
로 카나 하원의원은 액시오스와 인터뷰에서 “이쯤 되면 우리는 나머지 192개 국가에 대해서도 ‘전쟁 권한 결의안’을 제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8~21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디스플레이 학술대회 IMID 2026에서 폴더블 화면의 밝기 저하 문제를 해결한 ‘와이드뷰 디스플레이’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현재는 폴더블 화면의 접힘부에서 양측 곡면 밝기가 정면 대비 약 40% 수준에 그치는데, 최신 광시야각 기술을 적용한 이번 기술은 휘어진 부분에서도 휘도 저하가 최소화된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폴더블, 슬라이더블, 롤러블 등 차세대 폼팩터 제품에서 시야각에 따른 밝기 차이 없이 균일한 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밖에 화면을 늘이거나 형태를 변형할 수 있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를 최대 크기인 20형으로 구현안 ‘와이드 스트레처블’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AI 기기에 적용가능한 다양한 제품도 공개했다. 눈동자 움직임을 추적하는 휴머노이드 디스플레이, OLED 턴테이블, 목걸이 형태의 OLED 펜던트 등이다.
LG디스플레이는 자체 개발한 차세대 OLED 패터닝 기술 ‘FLiPP’을 최초 공개한다. 기존 OLED 공정에선 기판 위에 금속 그물망인 FMM(파인메탈마스크)을 부착해 적·녹·청색 유기물을 구멍에 맞춰 증착해 화소를 만들었지만, 색이 섞이는 등 불량이 나타나는 게 단점이었다. 반면 FliPP은 기판 전체에 유기물을 도포하고 고정해 자외선을 이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기 때문에 휘도와 수명을 높이면서 소비 전력을 줄일 수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차세대 OLED TV 패널 구동 기술인 HDS는 IMID ‘올해의 디스플레이 대상’을 수상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갤럭시S26 울트라용 OLED도 같은 상을 받았다.
이번 여름 부산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렸다. 한국은 유네스코 ‘세계의 기억’에 등록된 문화유산이 많은데, 그중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이다. 국립실록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 공동으로 ‘만세(萬世)에 전하노니’라는 실록 전시회를 열었고,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전시는 국가기록원(태백산본), 규장각(정족산본), 국립실록박물관(오대산본)에 보관된 실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전시회와 함께 동아시아 실록의 전통을 비교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는데, 한국·중국·베트남의 전문 학자들이 각국의 역사 편찬 경험에 대해 흥미로운 발표를 해주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기조강연자로 참석한 경험을 살려서, 실록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한국·중국·베트남에서 각각 다르게 펼쳐졌던 실록의 역사적 양상과 숙명을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왕조 위의 역사
전시회 제목에는 영원하다는 의미의 ‘만세’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만세는 일세(一世)와 대비되는 말이다. 일세는 한 세대(A generation), 곧 20~30년에 해당하지만, 만세와 대비될 때는 당대(contemporary)를 뜻한다. 그래서 관용적으로 ‘언론은 일세의 공론, 역사는 만세의 공론’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동시대의 공론을 주도하는 것이 언론이었다면, 역사는 한 세대에 그치지 않고 영원히 공론으로 남는다고 대체로 생각했다.
내가 조선실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진 의문 중 하나는, 보지도 못할 역사를 왜 남기나 하는 점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사례를 확인할 때 사관을 보내 관련 부분만 베껴오도록 했을 뿐, 사관 외에는 국왕을 비롯해 그 누구도 실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록은 기약 없이 ‘후대를 위해’ 남겨놓은 역사였다. 결국 그 ‘후대’란 해당 왕조 이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왕조나 국가 외에 문명, 혹은 왕조를 넘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관점이자 영역이 바로 역사였다. 그런 까닭에 왕조 시대에, 왕조 이후를 언급하는 모든 행위는 반역으로 몰릴 수 있었지만, 오직 ‘역사의 이름으로’만 왕조 이후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할 것이다.
‘맹자’와 ‘로마서’
역사 및 그 역사를 살았던 수많은 인간의 삶에 대해,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과 기독교 문명권은 서로 다르게 접근하였다. 다음과 같은 말을 비교하면 두 문명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① “세상의 질서와 원칙이 쇠퇴하면서, 거짓된 말과 몹쓸 행동이 생겨났다. 신하가 임금을,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끔찍한 경우도 있었다. 공자가 걱정되어 역사서 <춘추>를 지었는데… <춘추>가 완성되자 세상을 어지럽힌 무뢰배들이 벌벌 떨었다.” - <맹자(孟子)>
②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신약성경 <로마서>
두 고전의 말에는 기록과 평가가 공통으로 언급되지만 그 주체는 다르다. <맹자>는 역사의 평가가 두렵게 한다고 했고, <로마서>는 하나님이 진노하고 심판한다고 했다. 종종 나라에 죄를 지은 자들이 자기변명 삼아 하는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라는 망발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런 어법은 <로마서>보다 <맹자>의 문화 속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라이프니츠의 놀라움
유럽 17세기 후반, 작센(현 독일 지역) 출신 라이프니츠는 그리말디와 부베 신부로부터 중국 소식을 알게 되었다. 명나라가 망하고 만주족 청나라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들은 바에 따라, “위대한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인 이 왕은, 유럽 봉건제의 왕들이 신분제 의회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데 비해 역사의 평가를 더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역사 편찬자가 자신의 치세를 기록하고 비밀 서고에 보관할 때를 생각하여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갈 수 있는 행위를 조심하였다”고 자신의 저서 <최근 중국 소식>에 적어두었다. 기독교 문명에 살던 그는 군주가 신이 아닌 역사를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점에 놀랐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청나라 황제는 강희제(康熙帝) 성조(1662~1722)였다. 중국식 이름이 탕약망(湯若望)이었던 아담 샬 등 유럽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중국의 오랜 역사 편찬 전통의 일부만 들었을 뿐이다. 당대의 역사를 남기는 실록은 당 태종 때 편찬이 시작되어 조선과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팔려나간 실록
한데 라이프니츠가 역사의 기록에 그토록 예민했다고 말한 강희제 때 청나라의 실록이 외국으로 팔려나갔다. 청나라 실록에 대한 발표자였던 시앙쉬안 교수에 따르면, 1763년 나가사키를 통해 강희제 때 편찬되었던 3대 순치제의 ‘세조실록’이 일본으로 팔려 갔다는 것이다.
세조실록만이 아니었다. 후금(後金)을 일으킨 누르하치의 ‘태조실록’, 두 차례 조선을 침략하고 청나라를 세운 태종의 실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른바 ‘청나라의 초기 세 왕대(淸三朝)’ 실록이 에도로 밀반출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실록 관리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출된 청나라 실록은 상선이 싣고 온 물건 목록에서도 확인되지만, 이들 실록을 내각문고의 전신인 막부문고에 보관했다는 당시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세 실록은 교토대, 국회도서관, 동양문고, 도쿄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에도시대 학자들은 이 실록을 주제별로 분류하거나, 내용을 요약한 ‘사략(事略)’ 형태로 활용하기도 했다.
여전히 청초 세 실록이 어떻게 유출되어 일본으로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단서조차 알 수 없다. 망한 왕조의 실록이라면 자연 노출, 공개되었을 것이지만 한창 왕조의 긴장감이 높았을 강희~건륭 연간에, 그것도 외국으로 유출됐으니, 이 미스터리는 추적할 만한 연구 주제일 것이다.
열대 베트남의 ‘식록(寔錄)’
명나라 실록은 황제가 볼 수 있는 어람용 실록까지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관 외에 누구도 볼 수 없었던 조선실록과 달랐다. 실록 편찬 뒤 명나라는 사초를 태웠고, 조선에서는 세검정 차일암에서 물에 씻었다. 물로 씻든 불로 태우든 이 행위는 한 시대를 정리하는 방법이자 예식이었다. 청실록은 만(滿)·몽(蒙)·한(漢) 세 언어로 편찬되었다. 정본 4부와 부본 1부가 제작되었으니, 조선처럼 5부 간행한 것이다.
‘실록’이라는 이름은 베트남에서도 발견된다. 베트남의 실록으로 완(阮·1802~1945) 왕조의 ‘대남식록(大南寔錄)’이 있는데, 식(寔)은 실(實)과 같은 글자이다. 성균관과 문묘가 있던 베트남이었으므로 실록도 편찬했으리라 짐작은 했었고 대략은 알고 있었는데, 레 투이 린 박사는 조선실록과 같은 실록을 베트남에서도 편찬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남식록의 경우, 전편은 지나간 왕조의 역사이고, 정편만 완 왕조의 실록이었다. 완 왕조 이전에는 고려~조선실록과 같은 체계적인 역사 편찬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데,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아마 열대의 고온다습한 기후가 종이기록을 보관하는 데 부적합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를 위해서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게 우선일 듯해 레 박사에게 물어보니 베트남 내에서 대남식록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한문을 읽을 수 있는 학자가 이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자를 바탕으로 한 쯔놈 문자를 사용해왔는데, 프랑스 지배 아래 1885년 이후 로마자 기반의 쯔꾸옥응으를 사용했다. 이것이 과거 역사에 대한 문맹을 초래한 셈이었다.
명실록과 청실록은 현재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대남식록은 일부 놈파운데이션(Nom Foundation)을 통해 이미지가 제공되고 있지만, 검색 시스템은 제공되지 않는다. 어떤 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그 사회의 역사와 경험을 아는 것이 첫걸음이다. 한국·중국·베트남의 실록 연구가 더 깊어지고, 그에 따라 서로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가 평화와 우호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讀史管見: 역사를 읽는 소박한 눈
미국·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에 따른 후속 협상 시한이 빈손으로 만료된 가운데 오만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의 오랜 우방이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두고 이란과 협상 중인 오만까지 폭격하겠다고 위협하자,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제한하는 결의안 제출을 예고했다.
미 폭스뉴스는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인터뷰 도중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완전히 폭격할 것”이라고 욕설을 섞어 말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이후 취재진이 ‘오만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그들(오만)이 매우 잘 행동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들을 다뤄왔듯 오만도 매우 쉽게 다룰 것”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이란과 합의한 60일간의 후속 종전 협상 시한이 이날로 만료된 뒤 나왔다. 양측은 지난 6월 종전 MOU를 체결하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등을 두고 60일간 후속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휴전 기간에도 교전이 재개됐고, 양측은 휴전 연장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이란 측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18일 미국이 MOU에 따른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오만은 미·이란 전쟁 기간 중립 노선을 유지하며 양측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한 오만은 전쟁 발발 직후 이란 측과 물밑 대화 채널을 구축했으며, 최근에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리를 둘러싼 협상을 이어왔다.
오만은 온건하고 관용적인 이슬람교 분파인 ‘이바디파’가 주류인 국가로,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왔다.
동시에 미국의 오랜 우방국이기도 하다. 오만은 1833년 걸프 지역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으며, 2009년에는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오만은 미국이 자국 항구를 역내 군사 물류 거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별도 미군 기지를 두고 있지는 않다.
이처럼 미·이란 양측과 관계를 유지해온 오만은 2015년 이란 핵 합의 협상 과정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발언이 미국의 전쟁 목표 달성을 위한 협상력이 약화한 상황과 관련 있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전했다. 이 매체는 “오만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궁극적으로 좋은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은, 그가 자초한 상황에 대한 분노를 반영할 뿐”이라며 “그저 반사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며 이번에는 오만이 표적이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군사·경제적으로 밀접한 우방국으로도 향하자 미국 정치권에서는 반발이 나왔다. 미 온라인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권한 제한 범위를 대오만 군사 행동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민주당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포착된다고 전했다. 앞서 미 상원은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군사 행동을 저지하는 결의안을 10번의 시도 끝에 통과시킨 바 있다.
민주당 소속인 팀 케인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내달 돌아오는 회기에서 대오만 전쟁 권한 제한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오만이 강력한 외교적 관계와 함께 FTA 관계로도 이어져 있다며 “권력에 취해 비틀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세계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전했다.
로 카나 하원의원은 액시오스와 인터뷰에서 “이쯤 되면 우리는 나머지 192개 국가에 대해서도 ‘전쟁 권한 결의안’을 제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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