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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혼전문변호사 [임의진의 시골편지]입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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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작성일26-07-28 01:40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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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혼전문변호사 배우 한석규씨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노래하는 어느 날. “이젠 너를 남겨 두고 나 떠나야 해. 사랑도 그리움도 잊은 채로 고운 너의 모습만은 가져가고 싶지만 널 추억하면 할수록 자꾸만 희미해져. 태연한 척 웃고 있어도 너의 마음 알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의 손을 잡아주렴. 지금 이대로 잠들고 싶어. 가슴으로 널 느끼며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싶어.” 밤새 비가 내려 빗소리 자장가에 푹 잠들었지.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은 나중에 꾸기로 하고, 월드컵 새벽 중계에 깨곤 했다. 이젠 월드컵도 끝나고 생업에 전념하자면서 당신이 다그쳐. 이 동네는 월드컵 아니라 올드컵. 땡볕을 피해 올드 스타들이 논밭에 잠시 보인다. 축구 중계할 시간에 맞춰 새벽을 깨우는 소리. 간밤 주정뱅이들만 꼼지락대며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이야.
간만에 지인들 만나 올드한 팝송을 들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밤이 이슥할 즈음 입가심으로 딱 한 잔만 더 마시잔 말에 정나미 없이 뿌리치지 못했다. 입가심 때문에 눌러앉은 시간, 사연들을 생각하면 행복한 추억이고 아픔이다. 더는 야밤에 보이지 않는 이들도 생겨난다. 휴대폰이나 보며 여유를 자족할 수는 있지만, 외롭고 쓸쓸한 황혼의 풍경이다.
매운 고추, 청양고추를 부산 친구들은 땡초라 부르던데, 그러니까 ‘땡고추’. 당나라 당자를 써서 외래 작물이라고 ‘당초’라고도 했대. 아주 매운 고추를 잘게 썰어 넣은 ‘땡초 어묵국’에 혀가 얼얼해라. 최후의 입가심 한 잔과 어묵국. 여름밤의 흔한 풍경이다. 이러다가 매미가 울다 지쳐서 죽고, 찬 바람이 살살 불면 누가 남아서 입가심하자고 할까.
오랫동안 도시 변두리의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전전하며 살았다. 지금 사는 곳도 논밭이 아파트 단지로 바뀐 작은 신도시에 가깝다. 이런 곳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자투리 땅만 생기면 어떻게든 개간해서 만든 밭이다. 가끔은 ‘사유지이니 경작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서 있기도 하지만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대단한 작물을 심는 것은 아니다.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따위의 야채류가 대부분이다. 가끔 콩을 심기도 하고 꽃을 기르는 경우도 있다. 사진 속의 밭은 수년 전 세들어 살던 어느 아파트 단지 밖의 길가에 있던, 내가 본 것 중 가장 작은 밭이었다. 직경이 1m도 안 되는 정도의 땅을 돌로 둥글게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 씨를 뿌린 것이다.
이 밭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작은 밭은 손자·손녀의 농사 체험을 위해 만든 것일까, 아니면 다른 땅을 이미 남들이 차지해 어쩔 수 없이 일군 것일까. 그러면서도 감탄했다. 어떻게든 작은 밭이라도 일궈 무언가를 심어보려는 의지, 혹은 본능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것을 농경민족의 후예가 가진 농업본능이라고 불러도 될까? 도시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농촌 출신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취미로라도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어떤 주간지에는 그런 경험들이 에세이로 실리기도 하고, 책으로 펴내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우리에게는 그런 유전자 혹은 문화적 밈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도시의 골목을 돌아다니면 쉽게 보게 되는 화분에 배추나 고추, 상추를 키우는 것도 작은 밭의 일종일 것이다. 재배본능 혹은 경작본능이라고도 부른다는 이 농업본능은 사라진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 뭔가를 키운다는 즐거움이 겹쳐서 나타난 것일까.
그러면서 취미로 짓는 농사와 먹고살기 위한 본격적인 농사 사이에는 얼마나 큰 격차와 거리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도 시골 출신이라 어릴 적 농사일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모내기를 할 때는 못줄을 잡거나 모를 날랐다. 기계화되기 이전이라 동네 사람들과 품앗이를 통해 여러 사람이 모여 모를 심었다. 물론 점심 때 먹는 못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라 보통 때와는 다르게 먹을거리가 풍성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끼 먹고들 갔다.
가뭄이 심할 때는 작대기모와 호미모도 심었다. 작대기모는 겨우 물을 적신 논바닥에 작대기로 구멍을 뚫은 다음 모를 심는 것이고, 호미모는 호미로 파내 모를 심는 것이다. 모줄 없이 삐뚤빼뚤 심는 모라 고향에서는 그걸 지랄모라고 불렀다.
이 밖에도 농약 치기, 보리 베어 지게로 나르기, 퇴비 만들기 등 여러 일을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지독한 농약 냄새를 맡으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농약을 치는 일이었다. 가끔은 머리가 핑 돌기도 했다. 파라티온, 다이야지논, 호리돌 같은 농약 이름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작은 밭에도 작물이 자라면 잎마다 진딧물과 벌레가 달라붙었을 것이다. 농약을 뿌렸을까. 알 수 없지만 마음은 쓰였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밭이라도 정성 들여 키운 작물이 해를 입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힘든 법이니까.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울음소리에 깬다. 풀벌레, 참개구리, 두꺼비. 오늘 밤은 울보들의 집합이다. 불을 켜자 나방의 날개도 함께 펼쳐진다. 창문으로 달려드는 나방들이 꼭 밤의 발자국 같다. 밤마다 야금야금 읽는 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이다. 거기,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고유의 사진술이 있다면 얼마나 우리의 피부나 용모나 기후 풍토에 적합한 것이었을까 생각한다. 축음기나 라디오도 우리가 발명했다면, 훨씬 우리의 소리나 음악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물건이 나왔으리라.”
작가는 동양의 아름다움이 서양의 기계를 거치며 본래의 빛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움을 말한다. 하지만 꼭 기계만이 대상을 사멸시킬까. 손바닥만 한 휴대폰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나’를 거치며 죽어가는 아름다움도 있으리라. 압축된 이미지와 짧은 포맷 안에 다 담기지 않는 것들. 명확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감각과 느린 말 같은 것. 예를 들어 이런 것은 어떤가. 나방이 날개를 푸르르 떠는 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방에 내려앉은 정적을 알아채는 일.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 채, 밤이 펼치는 공연의 관람자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내가 그 공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
사진을 찍으려다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내가 이 작은 기계로 담을 수 있는 것은 창문에 붙은 나방 몇마리일 뿐이다. 녹음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만둔다. 아무래도 저 합창을 다 담지 못할 것 같다.
기록을 망설이는 사이에 책 속의 문장은 저만치 앞서간다. 작가는 다다미방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서양의 공간이 창을 크게 내어 집 안을 구석구석 밝히는 ‘빛의 공간’이라면 다다미방은 깊은 처마를 내밀어 빛을 차단한다. 처마를 타고 마당에서 빛이 굴절되어 겨우 방 안으로 들어올 때, 빛은 방 구석구석 얇은 묵처럼 켜켜이 쌓인다. 그러니 ‘그늘의 짙고 옅음’이야말로 그 공간이 가진 아름다움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 속에서 다다미방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그늘이 짙고 옅어질 때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이 그곳에 있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대상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조건이라면, 거기에는 그늘을 알아보는 ‘나’의 존재도 포함되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대상과 환경과 수용자가 서로를 가만히 물들이는 ‘관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여름밤의 아름다움도 나와 밤과 이곳이 만든 합작품이 아니겠는가.
책을 덮고 밤과 방과 나방을 바라본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선명한 고화질의 화면도 어둠 속 나방의 생생한 몸짓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대상을 가두고 포획하는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관계로 태어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유일한 방식은 기록이 아니라 통과일 테니까. 가두거나 움켜쥐는 대신, 밤의 정적과 서늘한 공기가 내 몸과 마음에 가만히 스며들도록 나를 내어준다. 이 밤의 관조자가 아니라 경험하는 자가 되고 싶다.
다시 스탠드를 끈다. 어둠이 몰려온다. 창문에 붙어 있던 나방도, 풀벌레도, 나도 마침내 경계를 허물고 뒤섞인다. 밤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비로소 여름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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