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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어중간한 인간, 그래서 우주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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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작성일25-06-15 16:17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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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언제부터 어려워졌을까? 사탕 몇개 더하기 빼기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점차 복잡한 상황이 주어지기 시작한다. 철수가 물에 소금을 타기 시작했을 때, 영희가 주머니에서 구슬을 뽑기 시작했을 때, 또는 수식에 갑자기 알파벳이 등장하면서 이게 수학인지 영어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허수를 처음 만났던 순간의 당혹스러움이 잊히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도 적응되지 않는다. 허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수학적 목적과 기능을 위해 인공적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허수는 단지 인간의 손으로 탄생한 하나의 발명품이라고 봐야 할까? 솔직히 그것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단순히 편의 때문에 만든 인공적인 도구로만 치부하기에는 기존 다른 수학 체계와 너무나 잘 맞물려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수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에 숨어있던 세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이 우주를 사랑하지만, 그 우주를 수학적으로 파고드는 천체물리학, 천문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과학을 어렵게 느끼기 시작했을까? 나는 과학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존재를 뒤쫓기 시작할 때부터 괴리감을 줬을 거라 생각한다.
먼 옛날 과학은 우리 일상을 다루는 문제였다. 냄비에 담긴 물이 어떻게 끓는지, 왜 우박은 땅으로 떨어지는지, 교회 천장의 진자가 얼마나 빠르게 진동하는지… 모두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히는 익숙한 문제만을 다뤘다. 그런데 지금의 과학은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원자들의 미시 세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별과 은하들의 거시 세계를 탐구한다.
그래서 지금의 천문학은 상당히 미묘한 위치에 놓여있다. 분명 우주에 실재하는 존재를 다루지만 지극히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천문학이 다루는 존재는 모두 우주에 물질로서 존재한다. 은하수를 떠도는 수많은 별과 외계행성들, 우리 은하 너머 셀 수 없이 많은 외부 은하들, 나아가 이 우주 공간에 스며들어있을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까지. 모두 지극히 물질적인 존재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도 가끔 연구를 하면서 이런 짓궂은 의문에 빠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논문을 쓰고 분석하고 있는 이 천체들이, 아니 분석하고 있다고 착각한 이 천체들이 막상 그곳에 가면 없는 건 아닐까? 내가 지금 무지개와 같은 허상을 좇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우주는 실제 나를 가두고 있는 물질적인 세계였을까, 아니면 단지 나와 동료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수학적 세계였을까?
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을 다루는 천문학은 마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관념을 다루는 철학, 수학처럼 느껴진다. 천문학은 지극히 물질적인 세계를 다루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학문이다.
물리학자 셸던 글래쇼는 이러한 과학의 변화를 보며 인간을 새롭게 정의했다. “인간은 원자에 비해 너무 크고, 별에 비해 너무 작다.” 실제로 인간의 평균적인 신체 사이즈를 비교해보면 원자핵에 비해서는 수십억배 더 크지만, 태양과 같은 일반적인 별에 비해서는 지극히 작다. 인간의 신체 크기는 딱 원자핵과 별 사이의 중간값 정도다. 이도 저도 아닌, 그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가장 애매한 크기이다. 그래서 글래쇼는 이런 이과식 농담을 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손가락이 너무 두꺼워서 원자를 집을 수도 없다. 반대로 팔은 너무 짧아서 별을 품에 안을 수도 없다. 어찌 보면 인간은 원자들의 미시 세계를 연구하기에도 최악이고, 별의 거시 세계를 연구하기에도 최악인 조건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어중간한 사이즈 덕분에 오히려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마음껏 넘나들고 상상하는 존재가 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신체가 원자핵 정도로 아주 작았다면 감히 우주의 거대구조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별만큼 거대한 덩치였다면 우주가 얼마나 작은 존재로 이루어져 있는지 역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운 좋게 애매한 크기를 가졌다. 이 태생적인 어중간함 덕분에 우리는 그 어떤 극단적인 스케일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세상을 골고루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우주가 우리에게 쥐여준 그 놀라운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건 우주의 가장 슬픈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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