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주어진 단서는 확진자에 대한 문서 한 장 뿐··· 역학조사관은 어떻게 접촉자를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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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작성일25-06-15 10:56 조회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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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상의 감염병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건설회사 직원 홍길동씨(48·가명)는 얼마전 베트남인 부인과 함께 베트남에 다녀왔다. 생후 8개월 아이 홍수아(가명)도 함께였다. 귀국 이틀 후 아이의 온몸에 발진이 퍼지면서, 체온이 40도까지 올랐다. 인근 소아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아이가 최근에 베트남에 방문한 적이 있냐’고 묻고는 홍역이 의심된다고 했다. 홍역 항체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홍씨도 고열과 발진 증상이 나타나 회사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아 치료를 받았다.
귀국 4일째, 딸이 먼저 홍역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홍씨 가족이 이미 여러 의료기관을 다니면서 지역사회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 당신이 보건소 유일의 역학조사관이라면 어디서부터 조사를 시작해서 누구를 격리하고 보호하겠는가. 주어진 단서는 방역통합정보시스템으로부터 받은 감염병 발생정보 문서 한 장 뿐이다. 2급 법정 감염병인 홍역은 코로나19보다 전파력이 훨씬 큰 병으로, 초기 전파 차단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인 역학조사관 50여명에게는 이 같은 시나리오가 주어졌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모인 지자체 역학조사반이 합동으로 감염병 대응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참석자들에게는 실제상황과 매우 유사한 홍역 지역사회 유행 시나리오 두 가지가 주어졌다.
참석자들은 실제 감염병 발생시 만들어지는 SNS 단체채팅방에 초대됐다. 채팅방에는 홍수아의 감염병 발생정보와 간단한 인적사항을 담은 공문 하나가 올라왔다. 문서 이상의 정보는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밖에 없다. 총 7개의 조에서 정해진 인터뷰 담당자들은 홍길동씨에게로 향했다. 질병대응센터 직원이 홍길동씨 역을 맡아 역학조사에 응했다.
“여행기간이 얼마나 되죠? 출입국 항공편명은 어떻게 되나요? 같은 비행기를 이용한 단체 여행객은 없었나요?”
강현비 역학조사관(서울시 구로구보건소)이 홍길동씨에게 질문을 하면서 빠르게 답변을 기록했다. 역학조사의 기본은 방역통합정보시스템으로부터 받은 환자의 인적사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다. 이후 강 조사관은 예방접종 여부, 의료기관 방문내역, 증상 등을 차분히 물으며 각종 추가정보를 수집했다.
훈련장 한 쪽에서는 역학조사관들이 의료기관 감염관리자를 둘러싸고 질문했다. 관리자 역을 맡은 질병대응센터 직원은 확진자가 소아과, 산부인과 등의 진료과를 지나 이동했다고 알려줬다. 조사관들은 확진자의 동선을 시간대별로 확인했다.
이날 훈련 진행을 도운 이은솔 역학조사관(질병관리청 수도권질병대응센터)은 “홍역은 전파력이 높고 공기 전파가 가능하기 때문에 체류 시간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확진자 방문 전후로 2시간 동안 동일한 공간에 있던 이들은 전부 접촉자로 분류된다. 이 조사관은 “실제로 홍역 확진자가 약국에 방문했을 때 안쪽 조제실에 있던 약사분이 공기로 감염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단서들이 테이블에 모였다. 참석자들은 의료기관으로부터 받은 접촉자 명단과 항공사로부터 받은 기내 접촉자 리스트를 살피면서 접촉자를 분류했다. 6개월 미만 영아, 임신부, 면역 저하자 등 고위험군이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현실의 역학조사는 훈련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이뤄진다. 이날은 여러 명이 토의하며 단서를 찾았지만, 평소에는 지자체 보건소별로 1~2명 있는 역학조사관이 관련자 인터뷰, 공문 요청, 의학적 판단까지 전 과정을 하루 이틀 내에 빠르게 수행해야 한다. 조별로 최종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에 참석자들은 자신만의 ‘꿀팁’을 공유했다. 한 참석자는 “대중교통 접촉자는 파악이 어렵지만, 공항버스나 교통카드 결제 기록을 이용해서 최대한 접촉자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경원 질병청 수도권질병대응센터 감염병대응과 과장은 “역학조사는 ‘현실에서 수많은 케이스를 겪으면서 익히는 도제식 교육’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염병마다 전파 양상, 대상이 다 달라서 경험을 통한 ‘노하우’가 필요한데, 어떻게 보면 인류학적 이해까지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홍역은 올해 1~5월 총 61명의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중 41명(67%)의 환자가 홍역 유행 국가인 베트남으로부터 유입됐다. 지자체 역학조사관들은 보건소로부터 통역을 지원받아서 베트남인 아내를 역학조사했다.
‘사회적 낙인’이 큰 감염병은 역학조사관의 세심한 접근이 더욱 요구된다. 2023년 4~5월에 한국에서 지역사회 유행이 있던 엠폭스(MPOX·원숭이두창)는 성 접촉이 주된 감염경로였기에 역학조사가 쉽지 않았다. 황 과장은 “담당 역학조사관이 감염이 주로 발생한 커뮤니티를 먼저 관찰하고 분위기를 파악한 후에, 조사 결과가 밖으로 알려질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관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홍역, 백일해 등 호흡기 전파 감염병의 자연유행 주기가 지연되면서 몇년치 유행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홍역이 유행하면서 올해 상반기 유행 규모가 이미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배다.
박현숙 역학조사관(서울시 송파구보건소)은 “주말이나 한밤중에도 지역 내에서 감염병 발생 알림이 올 수 있으니 전화기를 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일상”이라며 “초기 역학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 집단감염으로 크게 번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역 내 환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적은 숫자라고 해도 바로 긴장된다”고 말했다. 황경원 과장은 “전세계적으로 인수공통 감염병, 모기매개 감염병 등 위험이 커지고 있어서 앞으로 역학조사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귀국 4일째, 딸이 먼저 홍역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홍씨 가족이 이미 여러 의료기관을 다니면서 지역사회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 당신이 보건소 유일의 역학조사관이라면 어디서부터 조사를 시작해서 누구를 격리하고 보호하겠는가. 주어진 단서는 방역통합정보시스템으로부터 받은 감염병 발생정보 문서 한 장 뿐이다. 2급 법정 감염병인 홍역은 코로나19보다 전파력이 훨씬 큰 병으로, 초기 전파 차단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인 역학조사관 50여명에게는 이 같은 시나리오가 주어졌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모인 지자체 역학조사반이 합동으로 감염병 대응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참석자들에게는 실제상황과 매우 유사한 홍역 지역사회 유행 시나리오 두 가지가 주어졌다.
참석자들은 실제 감염병 발생시 만들어지는 SNS 단체채팅방에 초대됐다. 채팅방에는 홍수아의 감염병 발생정보와 간단한 인적사항을 담은 공문 하나가 올라왔다. 문서 이상의 정보는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밖에 없다. 총 7개의 조에서 정해진 인터뷰 담당자들은 홍길동씨에게로 향했다. 질병대응센터 직원이 홍길동씨 역을 맡아 역학조사에 응했다.
“여행기간이 얼마나 되죠? 출입국 항공편명은 어떻게 되나요? 같은 비행기를 이용한 단체 여행객은 없었나요?”
강현비 역학조사관(서울시 구로구보건소)이 홍길동씨에게 질문을 하면서 빠르게 답변을 기록했다. 역학조사의 기본은 방역통합정보시스템으로부터 받은 환자의 인적사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다. 이후 강 조사관은 예방접종 여부, 의료기관 방문내역, 증상 등을 차분히 물으며 각종 추가정보를 수집했다.
훈련장 한 쪽에서는 역학조사관들이 의료기관 감염관리자를 둘러싸고 질문했다. 관리자 역을 맡은 질병대응센터 직원은 확진자가 소아과, 산부인과 등의 진료과를 지나 이동했다고 알려줬다. 조사관들은 확진자의 동선을 시간대별로 확인했다.
이날 훈련 진행을 도운 이은솔 역학조사관(질병관리청 수도권질병대응센터)은 “홍역은 전파력이 높고 공기 전파가 가능하기 때문에 체류 시간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확진자 방문 전후로 2시간 동안 동일한 공간에 있던 이들은 전부 접촉자로 분류된다. 이 조사관은 “실제로 홍역 확진자가 약국에 방문했을 때 안쪽 조제실에 있던 약사분이 공기로 감염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단서들이 테이블에 모였다. 참석자들은 의료기관으로부터 받은 접촉자 명단과 항공사로부터 받은 기내 접촉자 리스트를 살피면서 접촉자를 분류했다. 6개월 미만 영아, 임신부, 면역 저하자 등 고위험군이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현실의 역학조사는 훈련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이뤄진다. 이날은 여러 명이 토의하며 단서를 찾았지만, 평소에는 지자체 보건소별로 1~2명 있는 역학조사관이 관련자 인터뷰, 공문 요청, 의학적 판단까지 전 과정을 하루 이틀 내에 빠르게 수행해야 한다. 조별로 최종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에 참석자들은 자신만의 ‘꿀팁’을 공유했다. 한 참석자는 “대중교통 접촉자는 파악이 어렵지만, 공항버스나 교통카드 결제 기록을 이용해서 최대한 접촉자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경원 질병청 수도권질병대응센터 감염병대응과 과장은 “역학조사는 ‘현실에서 수많은 케이스를 겪으면서 익히는 도제식 교육’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염병마다 전파 양상, 대상이 다 달라서 경험을 통한 ‘노하우’가 필요한데, 어떻게 보면 인류학적 이해까지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홍역은 올해 1~5월 총 61명의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중 41명(67%)의 환자가 홍역 유행 국가인 베트남으로부터 유입됐다. 지자체 역학조사관들은 보건소로부터 통역을 지원받아서 베트남인 아내를 역학조사했다.
‘사회적 낙인’이 큰 감염병은 역학조사관의 세심한 접근이 더욱 요구된다. 2023년 4~5월에 한국에서 지역사회 유행이 있던 엠폭스(MPOX·원숭이두창)는 성 접촉이 주된 감염경로였기에 역학조사가 쉽지 않았다. 황 과장은 “담당 역학조사관이 감염이 주로 발생한 커뮤니티를 먼저 관찰하고 분위기를 파악한 후에, 조사 결과가 밖으로 알려질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관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홍역, 백일해 등 호흡기 전파 감염병의 자연유행 주기가 지연되면서 몇년치 유행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홍역이 유행하면서 올해 상반기 유행 규모가 이미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배다.
박현숙 역학조사관(서울시 송파구보건소)은 “주말이나 한밤중에도 지역 내에서 감염병 발생 알림이 올 수 있으니 전화기를 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일상”이라며 “초기 역학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 집단감염으로 크게 번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역 내 환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적은 숫자라고 해도 바로 긴장된다”고 말했다. 황경원 과장은 “전세계적으로 인수공통 감염병, 모기매개 감염병 등 위험이 커지고 있어서 앞으로 역학조사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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