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 공개가 남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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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작성일26-10-01 10:47 조회6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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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면 필자는 항상 묻는다. “이 활동으로 돈을 벌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진짜 사람을 살리고 싶은 것인가.” 만약 단체를 알리고 활동비를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언론에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면 된다. 그러나 정말 북한 주민의 생명을 살리고 싶다면, 구출 경로나 당사자의 신원을 언론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 내용이 밝혀지는 순간 그들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에서 북한 노동당 간부 가족이 체포된 적이 있었다. 당시 국내의 여러 북한 인권 단체는 이들의 강제 북송을 막아달라며 공개 시위를 벌였다. 필자 역시 사건에 관여해 대사관 측과 소통하며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우리가 강제 북송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수록, 언론을 모니터링하는 북한 당국은 중국 측에 이들의 신원을 특정해 송환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들은 북한 법에 따라 불법월경죄로 범죄자가 되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에 송환을 요구할 시 북중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당 단체는 시위를 통해 언론의 조명을 받고 후원금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당국에 신원이 알려지면서 가족을 위험에 빠뜨렸다. 북한 인권 활동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해자의 지위가 확고해 여론의 압박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노출을 피해야 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수많은 사건을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 사안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언론 보도와 정치권의 언급이 없었더라면, 북한 당국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북한으로 돌아갔더라도 병사의 임무나 적의 선전에 속았다는 비판 정도만 받고 가족 품으로 돌아갈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집중적인 보도 탓에 이제 두 청년은 인민군이 두고두고 회자할 ‘사상 교양’ 자료로 전락했다. 북한 가요 ‘어머니의 소원’에 담긴 애절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북한에 남겨진 부모 형제가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가혹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남한행을 응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두 청년의 한국 사회 정착은 과연 순탄할 것인가. 과거 총탄을 뚫고 판문점을 넘어온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는 우리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 목숨을 걸고 넘어온 그를 우리 사회는 왜 온전히 품지 못했는지, 그는 왜 다시 먼 이국땅 미국으로 떠나야 했는지 깊이 있게 짚어본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 때 남하한 실향민 1세대나 현재의 많은 북향민은 매일 밤 술로 마음을 달래고 눈물짓곤 한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짙은 죄책감과 그리움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과연 이 포로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낯선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이라도 한다면,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더 엄격하고 차가운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북한군 포로 문제를 앞장서 조명했던 이들은 과연 이 두 청년들을 끝까지 책임질 것인가. 십중팔구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특정 단체의 이익이나 언론의 단발성 조회수, 얄팍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섣불리 소비돼서는 안 되는 매우 무겁고 엄중한 생명의 문제다.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고자 한다면, 이제 무책임한 스포트라이트를 거두고 깊은 침묵 속에서 그들의 생명과 삶을 지켜내야 할 때다.
지난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신규 수색로를 개척하려던 장병들이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우리 군과 유엔사는 문제의 지뢰를 북한군이 이른바 ‘국경선’ 요새화를 하면서 매설한 지뢰로, 곧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국회에서는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사건이 오히려 “서울의 자작극”이며 “총탄 한 발이라도 탄착되면 가차 없는 보복”을 할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무장화된 비무장지대’라는 역설을 둘러싼 적대적 공방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한모니까의 는 냉전의 전개 과정에서 정전을 유지해야 하는 비무장지대가 어떻게 무장화되고 양측의 적대를 생산해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전협정은 분명히 비무장지대를 적대행위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완충지대로 설정했지만, 처음부터 양측의 무장화와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됐다. 정전 직후부터 비무장지대에서의 협정 위반을 관리할 공동감시소조가 형해화되었고, 민정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군인이 드나들었다. 한국전쟁 때 만들어져 파괴되지 않은 요새들은 북측 비무장지대에서는 땅굴과 같은 지하 요새가 되었고, 남측 비무장지대에서는 요새화된 GP(감시초소)가 되었다.
1960년대 중반 한국군의 베트남 추가 파병을 앞두고 한·미가 대침투체계를 구축하고 비무장지대에 장벽과 같은 철책을 세우고 지뢰를 매설했지만, 비무장지대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고조됐다. 어느 쪽이 먼저 쏘고 어느 쪽이 보복했는지 가리기 어려운 교전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출렁일 때마다 비무장지대는 양측의 적대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천만다행히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1·21사태 직후 박정희 정부는 대북 보복을 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만류하고 대신 방어를 위한 군사원조를 공여했다. 푸에블로호 승무원들도 북·미 단독협상 끝에 열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왔다. 미국이 이미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에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지 않기 바랐기 때문이지만, 그로 인해 적어도 한반도의 대외적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1976년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의 도끼와 흉기로 살해당했을 때도 한·미의 대응은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내는 데서 멈췄고, 김일성은 유감을 표명했다. 김여정이 이번 담화에서 거론한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때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양측의 포격이 오고가며 북한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기까지 했지만, 판문점에서 남북의 고위급이 접촉하며 위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 이처럼 과거에도 비무장지대가 가진 구조적 불안정성으로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전쟁을 막았던 것은 강경대응이나 보복이 아니라 인내와 협상이었다.
물론 지금의 국면은 과거와는 또 다른 차원에 놓여 있는 듯하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고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처럼 요새화하는 와중에 나타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협상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본다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비무장지대가 또 한 번 출렁이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유엔사와 함께 사실관계를 파악해 명확히 밝히되, 우발적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긴장을 관리해야 한다. 위기를 누가 더 강경한지 겨루는 정쟁의 소재로 삼는 순간, 인내할 여지는 좁아지지 않을까. 겨울을 견디며 평화를 준비하자. 그것이 비무장지대의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다.
지난 추석 고향집으로 향하며 이번엔 좀 사근사근하게 딸 노릇을 해야지 마음먹었건만 웬걸, 무시로 퉁명스러움이 튀어나왔다. 근래 스스로를 ‘가녀장’이라 칭하는 최윤선의 <내 가게에 부모님을 고용했습니다>를 읽고, 이제 보호자의 자리가 뒤바뀌어가는 엄마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한참 생각해 놓고도 그랬다.
가녀장은 아직 사전에 없는 말이다. 이슬아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통해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가족의 생계와 의사결정을 책임져온 ‘가장’의 자리에 딸이 들어선다. ‘K장녀’와 닮았지만 책임감을 숙명처럼 떠안기보다 자기 방식으로 관계의 판을 다시 짠다는 점에서 다르다.
최윤선은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의 가녀장이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성실히 일해도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던 부모를 서울 연희동 전셋집으로 모셔와 작은 선술집 ‘또또’를 차렸다. 오랫동안 요식업을 해온 어머니는 조리 실장, 일흔이 넘은 아버지는 인턴이 돼 스투시 모자를 눌러쓰고 재료 사입과 홀을 맡았다.
가족이라고 저절로 좋은 동료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장님’이 된 딸은 ‘경력직’ 부모에게 꽤 깐깐했다. 자칫 젊은 세대 손님과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까 ‘손님에게 먼저 말 걸지 않기’와 같은 규칙도 세웠다.
이 책에서 좋았던 건 부모를 ‘구해낸’ 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래된 부모의 이력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으로 읽어낸 시선이 있었다. 선술집 또또는 그리하여 효도의 결과물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을 닮은 새로운 가족 브랜드가 됐다.
책을 읽는 내내 엄마 생각이 났다. 몇해 전 엄마가 “너 결혼 안 하고 계속 혼자 지낼 거면 집으로 안 내려올래? 엄마랑 같이 카페 하면 안 재밌겠나?” 하고 슬쩍 물어왔다. 진심으로 카페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생각이 없는지 떠보는 말이었단 걸 알면서도 나는 “절대 그럴 일은 없어” 하고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최근에는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주하며 경상도에 있는 가족들과 좀 더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이런 불효녀가 또 없다.
대학 때부터 줄곧 가족과 떨어져 살았지만, 나는 지금껏 K장녀의 역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경계하는 건 서로를 지나치게 챙기다 각자의 삶까지 흐려지는 일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는 서로를 딱하게 여기고 챙기는 마음이 짙게 배어 있다. 언젠가 동생이 “우리 집은 서로 위하다가 음식이 썩어나간다”고 한 적이 있다. 어쩌다 맛있는 게 생겨도 서로 먹으라고 미루다가 결국 상해서 아무도 못 먹게 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서로 아끼는 마음과 서로를 지치게 하는 일은 때때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또의 세 사람을 보고 있자니 다른 질문이 생겼다. 최윤선은 나이 든 부모를 부양의 대상으로 보기 전에, 그들이 삶에서 쌓아온 기량을 보았다. 나는 그간 엄마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3년 전 엄마의 칠순을 맞아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시간 가장으로 살아온 엄마에게는 첫 유럽행이었다. 엄마는 새로운 풍경을 볼 때마다 혼잣말처럼 “이야, 세상이 이렇게나 넓구나” 하고 말했다. 감탄과 한탄 사이의 말이었다. 엄마의 시선은 이내 주변의 유학생들로 옮겨갔다. “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세상을 다 경험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사람으로 살아가겠노.” 그리고 몇번이고 뒷바라지를 못해줘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땐 그 말을 부모로서의 회한으로만 받아들였는데, 뒤늦게 그 메아리에 깃든 목소리를 가늠한다. 그건 자식을 향한 미안함이기 이전에, 엄마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와 같이 살거나 함께 카페를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택한 건 거리 두기다. 가족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건강하게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다. 다만 멀리서도 관계를 이어갈 일은 찾아보려 한다. 요즘 향교에서 지공예를 배운다는 엄마에게 조만간 작품 하나를 의뢰해볼 참이다. 떨어져 살아도 서로의 일상을 놓지 않는 한, 멀어질 결심이 책임질 결심의 반대말만은 아닐 테다.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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